계약서 작성 전 필수 확인 사항: 당사자 특정과 서명 권한
계약서의 진정한 목적을 이해하고, 서명 전 반드시 확인해야 할 당사자 특정, 법인등기부등본 조회, 서명 권한 확인, 주소 기재 방법 및 완전합의조항의 법적 효력 등 실무적인 필수 체크리스트를 안내합니다.
법률 검수 변호사: 이상엽 변호사 · 2026년 8월 18일
[0화] 계약서란 무엇인가 — 사인하기 전에 알아야 할 것들
1. 계약서는 계약이 아닙니다
먼저 오해 하나를 풀고 시작하겠습니다.
계약은 계약서를 써야 성립하는 것이 아닙니다. 전화로 "이거 해 주실 수 있나요" "네, 해 드리겠습니다" 하고 끊는 순간 계약은 이미 성립했습니다. 카카오톡으로 "그 조건에 진행하시죠"라고 보내고 상대가 "네"라고 답했다면 그것도 계약입니다.
그럼 계약서는 왜 쓸까요.
나중에 다투게 됐을 때, 우리가 무엇을 약속했는지 증명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차이가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계약서를 "우리가 합의한 좋은 이야기를 정리해 두는 문서"라고 생각하면 계약서가 이상해집니다. 서로 기분 좋은 내용만 적히고, 정작 필요한 것이 빠집니다.
이렇게 생각하시는 편이 정확합니다.
계약서는 사이가 좋을 때 쓰는 문서가 아니라, 사이가 나빠졌을 때를 위해 쓰는 문서입니다. 그리고 사이가 좋을 때가 아니면 쓸 수가 없습니다.
"우리 오래 알고 지냈는데 계약서까지 써야 하나요"라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오래 알고 지냈으니까 지금 쓸 수 있는 겁니다. 사이가 틀어진 뒤에는 아무도 사인해 주지 않습니다.
2. 계약서는 '1년 뒤의 우리'에게 쓰는 편지입니다
지금 계약을 논의하는 두 사람은 서로를 이해하고 있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아는 것들이 있습니다. 문제는 그 두 사람이 계속 있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담당자가 바뀝니다. 대표가 바뀝니다. 기억이 흐려집니다. 그리고 다툼이 커져 법정까지 가면, 그 계약서를 읽는 사람은 우리를 전혀 모르는 판사입니다.
그래서 계약서를 쓸 때 기준은 하나입니다.
우리 사정을 하나도 모르는 제3자가 이 문서만 읽고도 판단할 수 있는가.
"그때 이렇게 하기로 했잖아요"는 계약서 밖에서는 아무 힘이 없습니다.
3. 가장 자주 틀리는 곳은 놀랍게도 첫 페이지입니다
정교한 조항을 검토하다가, 정작 첫 줄에서 상대방이 누구인지 특정되지 않은 계약서를 자주 봅니다. 여기가 틀리면 나머지 40개 조항이 전부 무의미해집니다. 이길 수 있어도 청구할 상대가 없기 때문입니다.
① 상대방은 '누구'입니까
계약서에 이렇게 적혀 있다고 해 봅시다.
❌ "○○스튜디오(이하 '을'이라 한다)"
이건 누구인지 알 수 없습니다. ○○스튜디오가 법인인지, 개인사업자인지, 아니면 그냥 어떤 사람이 쓰는 브랜드 이름인지 알 수 없습니다. 나중에 돈을 못 받아 소송을 걸려고 해도 피고를 특정할 수 없습니다.
브랜드명과 법인명은 다릅니다. 우리가 아는 이름과 등기부에 적힌 이름이 다른 경우가 대단히 많습니다.
법인이라면 이렇게 적혀야 합니다.
상호: 주식회사 ○○스튜디오
(또는 ○○스튜디오 주식회사 — '주식회사'가 앞인지 뒤인지까지 등기부와 일치해야 합니다) 법인등록번호 또는 사업자등록번호: 000-00-00000 본점 소재지: (등기부상 주소) 대표이사: 홍길동
개인사업자라면 이렇게 적혀야 합니다.
상호: ○○스튜디오
대표자: 홍길동 (주민등록상 성명) 사업자등록번호: 000-00-00000 사업장 주소: ─
② 법인인지 개인사업자인지가 왜 중요한가
여기서 책임의 범위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법인과 계약하면, 그 법인이 진 빚은 법인이 갚습니다. 대표이사 개인의 재산에는 원칙적으로 손을 댈 수 없습니다. 법인이 자본금 100만 원짜리 껍데기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금액이 큰 거래라면 대표이사 개인의 연대보증을 받아 두는 방안을 추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개인사업자와 계약하면, 그 사람은 사업 재산과 개인 재산을 구분하지 않고 전부 책임집니다. 받을 돈이 있다면 개인 재산에도 집행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우리가 개인사업자로서 계약한다면, 사업이 잘못됐을 때 개인 재산까지 미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같은 이름의 다른 법인도 조심하셔야 합니다. 계열사가 여럿인 경우 계약은 A법인과 맺었는데 실제 일은 B법인이 하고, 문제가 생기면 서로 미루는 일이 생깁니다. 일을 실제로 수행하는 주체와 계약 당사자를 일치시키거나, 다르다면 그 관계를 계약서에 명시해야 합니다.
③ 확인은 이렇게 합니다
무엇을: 법인등기부등본 / 어디서: 인터넷등기소 (열람 700원) / 무엇을 보나: 정확한 법인명, 실제 대표이사, 본점 주소, 자본금, 회생·파산·청산 진행 여부
무엇을: 사업자등록증 사본 / 어디서: 상대방에게 요청 / 무엇을 보나: 업태·종목이 우리가 맡길 일과 맞는가
무엇을: 사업자 상태 조회 / 어디서: 국세청 홈택스 / 무엇을 보나: 휴업·폐업 상태는 아닌가
무엇을: 인허가·면허 / 어디서: 해당 관청 / 무엇을 보나: 건설, 화물운송, 파견, 여행업 등 면허가 필요한 업종인가
특히 등기부등본은 반드시 보시기 바랍니다. 계약서에 적힌 대표이사가 이미 몇 달 전에 바뀌어 있는 경우를 정말 자주 봅니다.
④ 서명하는 사람에게 권한이 있습니까
계약서 맨 뒤에 대표이사가 아닌 사람이 서명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본부장, 지점장, 팀장.
원칙적으로 회사를 대표해 계약을 체결할 권한은 대표이사에게 있습니다. 그 외의 사람이 서명한 계약은 나중에 회사가 "그 사람에게는 그런 권한이 없었다"고 다툴 여지가 생깁니다. 결국 소송으로 가야 결론이 납니다.
해결책은 간단합니다. 위임장을 함께 받아 두시면 됩니다. 대표이사 명의로 "위 사람에게 본 계약 체결 권한을 위임함"이라고 적힌 한 장이면 충분합니다. 요청하는 것이 실례가 아니라, 요청하지 않는 것이 실수입니다.
⑤ 주소는 '나중에 내용증명 보낼 곳'입니다
주소를 형식적으로 적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은데, 이 주소는 실무적으로 중요한 기능을 합니다.
계약을 해지하거나, 시정을 요구하거나, 대금을 독촉할 때 내용증명 우편을 보냅니다. 그 우편이 도달해야 법적 효력이 생깁니다. 그런데 등기부상 주소는 이미 이사 간 곳이고 실제 사무실은 다른 데라면, 우편이 반송되면서 통지 자체가 무효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계약서에는 이런 조항을 넣습니다.
"본 계약에 따른 통지는 아래 주소로 하며, 주소가 변경된 경우 변경일로부터 7일 이내에 상대방에게 서면으로 통지하여야 한다. 통지하지 아니한 경우 기존 주소로 발송된 통지는 도달한 것으로 본다."
⑥ 우리 쪽 칸이 비어 있지는 않습니까
의외로 흔합니다. 상대방 정보는 다 채워져 있는데 우리 회사 칸이 공란인 채로 회람되는 계약서. 그대로 서명되면 당사자가 특정되지 않은 계약서가 됩니다. 서명 직전에 양쪽 칸을 모두 확인하십시오.
4. 도장, 서명, 그리고 전자계약
인감이어야 하나요? 법적 효력은 막도장이든 인감이든 같습니다. 다만 나중에 "그 도장은 우리가 찍은 게 아니다"라고 다툴 때 인감도장 + 인감증명서가 있으면 훨씬 유리합니다. 금액이 큰 계약이라면 인감증명서를 함께 받아 두시길 권합니다.
간인(間印)은 왜 찍나요? 여러 장짜리 계약서의 페이지 사이에 걸쳐 찍는 도장입니다. 나중에 중간 페이지를 바꿔치기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번거로워 보여도 이유가 있는 절차입니다.
수정할 때는 두 줄로 긋고 그 위에 양쪽이 정정날인을 합니다. 수정액이나 덧칠은 절대 하지 마십시오.
전자계약은 효력이 있나요? 있습니다. 전자문서 및 전자거래 기본법에 따라 종이 계약서와 동일한 효력을 갖습니다. 오히려 위조·변조 이력이 남아 증거로서는 더 강한 경우도 있습니다. 다만 실무상 실물서류를 요하는 경우 그 증빙이 다소 곤란할 수 있습니다.
5. 계약서 바깥에도 계약이 있습니다
이 부분은 특히 놓치기 쉽습니다.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고 해서 그 문서 하나만 계약인 것은 아닙니다. 견적서, 발주서, 제안서, 주고받은 이메일, 심지어 카카오톡 대화도 계약 내용을 이루거나 해석의 근거가 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두 가지 문제가 생깁니다.
첫째, 서로 충돌하면 무엇이 우선하는가. 견적서에는 "수정 3회"라고 되어 있고 계약서에는 아무 말이 없다면? 이런 다툼을 막기 위해 우선순위 조항을 넣습니다.
"본 계약서와 별첨·견적서·발주서의 내용이 상충하는 경우 본 계약서가 우선한다. 단, 대금과 수량은 개별 발주서에 따른다."
둘째, 협상 중에 들었던 약속이 계약서에 없다면. 원칙적으로 효력을 주장하기 어렵습니다. 특히 계약서에 아래와 같은 조항(완전합의조항)이 있으면 더욱 그렇습니다.
"본 계약은 본 건에 관한 당사자 간의 완전한 합의이며, 본 계약 체결 이전의 모든 구두 또는 서면 합의를 대체한다."
협상 과정에서 중요한 약속을 들으셨다면 반드시 계약서 본문이나 별첨으로 옮겨 두십시오. "그때 담당자가 그렇게 말했는데요"는 나중에 아무 힘이 없습니다.
6. 날짜와 부수
계약체결일과 효력발생일은 다를 수 있습니다. 이미 8월 1일부터 일을 시작했는데 도장은 8월 20일에 찍는 경우, "본 계약은 2026년 8월 1일부터 효력을 발생한다"고 명시하면 소급 적용이 가능합니다. 명시하지 않으면 다툼이 생깁니다.
부수는 통상 2부를 작성해 각 1부씩 보관합니다. 서명 후 상대방이 보관한 것과 내가 보관한 것이 동일한지 확인하십시오. 전자계약이면 자동으로 해결됩니다.
7. 여기까지가 혼자 확인할 수 있는 범위입니다
마지막 네 항목은 특히 강조하고 싶습니다. 존재하지 않는 날짜, 첨부되지 않은 별첨, 잘못 인용된 조문 번호, 비어 있는 괄호. 검토를 의뢰받는 계약서의 상당수가 이 중 하나 이상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것들은 결정적인 순간에 조항 하나를 통째로 무력화시킵니다.
다만 한 가지를 함께 말씀드려야겠습니다. 여기까지가 혼자서 확인할 수 있는 범위의 끝입니다.
위 체크리스트가 잡아내는 것은 눈에 보이는 오류입니다. 정작 비싼 대가를 치르게 되는 쪽은 대개 문장이 멀쩡한 조항들입니다.
각각은 흠잡을 데 없이 쓰여 있는데 두 조항이 서로를 무력화하고 있는 경우. 이 업종이라면 당연히 들어갔어야 할 조항이 통째로 빠져 있는데, 없다는 사실 자체가 보이지 않는 경우. 그리고 이 거래에 어떤 법이 강제로 적용되는지 몰라서 이미 위반 상태로 서명하는 경우.
이런 것들은 계약서를 아무리 꼼꼼히 읽어도 발견되지 않습니다. 이 거래가 실제로 어떻게 틀어지는지를 알아야 비로소 보입니다.
순서는 이렇게 잡으시면 됩니다. 위 체크리스트로 형식을 걸러내시고, 금액이 크거나, 기간이 길거나, 처음 해 보는 유형의 계약이라면 그다음 층은 따로 확인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