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항력(Force Majeure) 조항, 그 이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 중동 전쟁 시대, 중소기업·스타트업이 반드시 알아야 할 계약 법리 실전 가이드
중동 분쟁 시 불가항력 조항은 자동 면책이 아닙니다. 영미법상 엄격한 요건과 통지 기한, 피해 최소화 입증이 필수입니다. 휴전 후 더 복잡해지는 법적 분쟁에 대비하세요.

Written by. 이상엽 변호사 (미국변호사 · 법무법인 오킴스)
들어가며 — "휴전"이라고 안심하기엔 너무 이르다
2026년 4월 22일, 미국과 이란 사이에 휴전이 연장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러나 호르무즈 해협은 여전히 정상 통항과 봉쇄를 반복하고 있고, 미 해군의 이란 항구 봉쇄는 계속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 정부가 심각하게 분열(seriously fractured)되어 있다"고 언급하며 휴전을 연장했지만, 협상이 타결된 것도, 전쟁이 끝난 것도 아니다. 전문가들은 "휴전 이후가 더 복잡한 법적 문제를 낳는다"고 경고하고 있다.
그 사이, 우리 중소기업들은 현장에서 이미 고통받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가 집계한 피해·애로 신고 건수는 2월 28일 분쟁 발발 이후 어느새 618건을 넘어섰다. 운송 차질(50.3%), 물류비 상승(36.9%), 계약 취소·보류(34.6%), 대금 미지급(18.2%)이 그 주된 피해 유형이다.
이런 상황에서 많은 기업들이 본능적으로 떠올리는 것이 바로 "불가항력(Force Majeure)" 조항이다. "전쟁이니까 불가항력 아닌가요?" 하지만 법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이 글에서는 실제 법적 분쟁 현장에서 어떤 함정이 기다리고 있는지, 그리고 지금 당장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중소기업·중견기업·스타트업의 시각에서 짚어보려 한다.
1. 불가항력이란 무엇인가
불가항력(Force Majeure)은 계약 당사자의 통제를 벗어난 예측 불가능한 사건으로 인해 계약 이행이 불가능해졌을 때, 그 책임을 면제하거나 이행을 유예하는 법적 장치다.
그런데 이 개념을 이해할 때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 있다. 불가항력은 법체계에 따라 그 성격과 적용 방식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한국이 따르는 대륙법계는 "내 잘못이 없으면 책임도 없다"는 원칙을 기본으로 한다. 계약을 못 지켰더라도 그게 내 실수나 고의가 아닌 전쟁 같은 외부 상황 때문이라는 점만 증명하면 된다. 그래서 계약서에 불가항력 조항을 깜빡하고 안 적었더라도, 법이 정한 기본 원칙에 따라 구제받을 수 있는 길이 어느 정도 열려 있다.
반면 영국이나 미국법이 중심인 영미법계는 "약속은 무조건 지켜야 한다"는 성격이 훨씬 강하다. 여기서는 전쟁이 터졌어도 원칙적으로는 계약 위반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법이 알아서 사정을 봐주지 않기 때문에, 당사자들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계약서에 "이런 상황에는 책임을 면해주자"는 내용을 아주 상세하게 적기 시작했다. 이것이 영미법에서 불가항력 조항이 유독 까다롭고 정교하게 발달한 이유다.
결론적으로 내 계약의 기준이 되는 법 (준거법)이 무엇인지에 따라 "전쟁이 났으니 당연히 괜찮겠지"라는 생각이 통할 수도, 아니면 전혀 안 통할 수도 있다.
2. 이번 중동 사태 — 전 세계 공급망에 어떤 충격이 왔나
이번 중동 사태는 단순한 지역 분쟁이 아니다. 글로벌 에너지·물류 시스템의 핵심 병목을 직격했다.
호르무즈 해협은 하루 약 2,000만 배럴의 원유, 전 세계 해상 원유 거래량의 약 20%가 통과하는 곳이다. 카타르, 쿠웨이트, 바레인의 국영 에너지기업들이 줄줄이 불가항력을 선언했다. 주요 기업들이 LNG 공급 계약에 불가항력을 선언하며 전 세계 에너지 시장에 충격파를 던졌다. 유가는 한때 배럴당 100달러에 근접했고, 전쟁 이전 수준 대비 60% 이상 상승한 수준이 유지되고 있다.
국내 중소기업들이 직접 중동과 원자재 계약을 맺고 있지 않더라도, 이 충격은 공급망 전체를 타고 흘러내려온다. 중동산 원자재 → 국내 화학사 → 중소 제조업체로 이어지는 연쇄 충격이 이미 현실화하고 있다. 계약 취소·보류 피해를 입은 기업 중에는 올해 들어온 모든 수주가 한꺼번에 취소된 기업도 있고, 인건비 지급조차 어려워 일시 휴업에 들어간 곳도 있다.
3. "전쟁이니 불가항력 아닌가요?" — 세 가지 함정
대부분의 중소기업들이 빠지는 가장 큰 오해는 이것이다. "계약서에 war(전쟁)나 force majeure라는 단어가 있으면 자동으로 보호받는다."
그렇지 않다. 국제적으로 법원과 국제중재 판정부가 적용하는 기준은 훨씬 엄격하다.
첫 번째 함정 — 해당 사건이 조항에서 정의한 불가항력 사유인가?
불가항력 조항은 천재지변, 전쟁, 테러, 정부 규제, 파업 등 사유를 열거하거나 포괄적으로 정의하는 방식으로 작성된다. 이번 중동 사태를 "전쟁"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 이란의 호르무즈 봉쇄를 "정부 조치"로 볼 수 있는지, 미국의 이란 항구 봉쇄를 "제재·엠바고"로 볼 수 있는지가 먼저 따져봐야 할 문제다. 또한 현재처럼 휴전이 선언된 상태에서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고 볼 수 있는지 자체가 논쟁 대상이 된다.
두 번째 함정 — 계약 이행이 단지 어렵거나 비용이 많이 드는 것인가, 아니면 정말 "불가능"해진 것인가?
불가항력 조항은 대부분 "prevented(이행이 방지된)", "hindered(방해된)", "affected(영향을 받은)" 중 어느 수준의 장애를 요구하는지에 따라 적용 범위가 크게 달라진다. 가장 일반적인 표현인 "prevented"는 말 그대로 이행 자체가 불가능해진 경우를 요구한다. 물류비가 3배 올랐다거나, 납기가 지연된다거나, 원가가 폭등했다는 것은 "어렵다"는 것이지 "불가능하다"는 것이 아니다. 특히 영미법 법원과 국제중재 판정부는 이 점에 매우 엄격하다.
세 번째 함정 — 통지(Notice) 요건
대부분의 불가항력 조항에는 "불가항력 사유가 발생하면 일정 기간 내에 서면으로 통지해야 한다"는 절차적 요건이 달려 있다. 14일, 30일 등 다양한 기한이 설정되는데, 이 통지를 제때 하지 않으면 실질적으로 불가항력 조항이 적용될 수 있었더라도 그 권리가 소멸할 수 있다. 실제로 중재 사건에서 실체적 요건은 충족했지만 통지 지연으로 패소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4. 휴전 이후의 역설 — 더 복잡해지는 법적 판단
이번 중동 사태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법리적 쟁점이 있다. 바로 "휴전 이후에도 불가항력이 계속 인정되는가"라는 문제다.
직관적으로 보면 "전쟁이 일어났을 때 불가항력이 성립했다면, 그게 끝나지 않는 한 계속 인정되어야 하지 않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법적 분석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아이러니하게도 휴전 발표와 호르무즈 해협의 일시적 통항 재개는 법적 판단을 한층 까다롭게 만든다. 특히 상대방 계약 당사자가 '운송로가 열린 시점부터는 계약 이행이 가능했음에도 왜 지체했느냐'는 식의 항변을 제기할 경우, 분쟁의 쟁점은 '전쟁 발발' 그 자체가 아니라 '특정 시점별 계약 이행 가능성'으로 옮겨갈 수 있다. 즉 불가항력의 시점과 상황이 변화함에 따라, 각 시점별로 이행 가능성을 개별적으로 따져야 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해협이 다시 봉쇄되고 해제를 반복하는 현재의 상황은 "부분적·간헐적 이행 불능"이라는 새로운 법리적 도전을 제기한다. 이는 전통적인 불가항력 분석틀을 넘어, 미이행 기간 동안의 손해 배분, 계약 종료권의 발생 여부, 재교섭 의무의 존재 등 복합적인 쟁점으로 이어진다.
인과관계 문제도 있다. "전쟁이 발생했다"는 사실 자체로 불가항력이 인정되는 게 아니라, 그 전쟁으로 인해 "내가 이행해야 할 구체적인 계약 의무"가 실제로 이행 불가능해졌는지가 핵심이다. 중동을 경유하지 않는 계약, 대체 공급루트가 존재하는 경우, 이미 물량을 확보해 둔 경우 등에서는 인과관계가 부정될 수 있다.
5. 준거법별 실전 대응 — 계약서를 먼저 열어봐야 한다
중소기업·스타트업이 맺는 국제 계약의 준거법은 생각보다 다양하다. 수출입 거래에서 영국법이나 싱가포르법이 준거법으로 지정되는 경우도 꽤 있고, 중동 거래처와의 계약에서는 UAE법, 사우디 법이 등장하기도 한다. 당연히 미국 기업과의 계약에서는 뉴욕주법이나 캘리포니아주법이 빈번하다.
영국법 계약이라면, 계약상 force majeure 조항의 문언이 전부다. 영국법은 frustration 법리를 갖고 있지만 적용 요건이 매우 엄격하여 별도로 기댈 수 있는 안전망이 별로 없다. 조항의 문언, 통지 요건, mitigation 의무를 꼼꼼히 검토해야 한다.
미국 뉴욕주법 계약이라면, 비슷하게 계약서의 force majeure 조항이 핵심이다. 뉴욕주 법원은 전통적으로 force majeure 조항을 엄격하게 해석하는 경향이 있어, "이행이 어렵거나 비용이 증가한 것"만으로는 요건이 충족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한국법 계약이라면, 민법 제390조의 채무불이행 면책 법리(고의·과실의 부존재)와 계약상 불가항력 조항이 병행 적용될 수 있다. 다만 계약서에 불가항력 조항이 명시적으로 있다면 그 조항이 우선 적용된다는 점에서 조항의 내용이 역시 결정적이다.
UAE나 카타르 등 중동 국가 법 계약은 이슬람 민상법 원칙과 현지 민법이 교차하는 복잡한 체계를 갖고 있다. 특히 현재 분쟁 당사자인 이란이나 이란과 연계된 거래의 경우, 제재(sanctions) 법규가 불가항력과 별개로 계약 이행 자체를 금지하는 법적 장애로 작용할 수 있다.
6. 지금 당장 해야 할 것들 — 체크리스트
따라서 국내기업들은 쟁 예방 차원에서 아래와 같은 실질적 조치들을 당장 취해야 한다.
Step 1. 계약서 전수 검토 — 3가지 핵심 항목 확인
중동 관련 거래, 원자재 조달, 수출입 물류 관련 계약서를 모두 꺼내 다음 세 가지를 확인해야 한다. 첫째, 불가항력 조항이 있는지, 있다면 어떤 사유를 열거하고 어느 수준의 장애를 요구하는지. 둘째, 통지 요건이 어떻게 규정되어 있는지(기간, 방식, 수신인). 셋째, 준거법과 분쟁 해결 조항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Step 2. 불가항력 통지 발송 — 늦으면 권리가 소멸한다
계약서에 불가항력 통지 기간이 규정되어 있다면, 그 기간은 원칙적으로 불가항력 사유 발생 시점부터 기산된다. 이번 분쟁의 경우 발발 시점이 2026년 2월 28이라고 본다면, 아직 통지를 발송하지 않은 기업이라면, 지금이라도 서면 통지를 검토해야 한다. 기간이 이미 도과한 경우에도, 통지를 아예 안 하는 것보다는 늦게라도 발송하고 사정을 설명하는 것이 낫다.
통지서에는 불가항력 사유의 구체적 내용, 이행에 미치는 영향, 예상 기간, 그리고 대체 이행을 위해 취한 조치 내용을 담는 것이 좋다.
Step 3. Mitigation(피해 최소화) 의무 이행 증거 확보
불가항력 주장의 성패는 '피해 최소화(Mitigation)'를 위해 얼마나 적극적으로 대안을 모색했느냐에 달려 있다. 대체 공급처를 확보하거나 우회 물류 경로를 검토하는 등, 기업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조치를 다했다는 점을 입증하지 못하면 불가항력 주장은 법정에서 힘을 잃기 쉽다. 구체적으로는 대체 공급처 탐색 증거, 우회 경로 검토 기록, 거래 상대방과의 협의 내역 등을 문서화하여 보관해야 한다. "손 놓고 있다가 상황이 나빠졌다"는 이미지는 불가항력 주장에 치명적이다.
Step 4. 거래 상대방과의 소통 — 침묵은 금이 아니다
많은 중소기업들이 상대방에게 "어렵다"는 말을 먼저 꺼내는 것이 불리하게 작용할까봐 침묵을 지킨다. 그러나 불가항력 분쟁에서 사전 소통의 부재는 오히려 불성실한 당사자라는 인상을 줄 수 있다. 가능하면 조기에 상황을 공유하고, 이행 지연의 불가피성과 대안 모색 의지를 서면으로 전달하는 것이 나중에 분쟁이 발생했을 때 훨씬 유리한 증거가 된다.
Step 5. 정부 지원 제도 병행 활용
법적 대응과 별개로, 정부가 마련하고 있는 지원책도 적극 활용해야 한다. 중기부는 2026년 추경에 수출바우처 확대(1,000억원), 긴급경영안정자금(2,500억원) 등을 편성했고, 중소기업진흥공단과 신용보증기금을 통한 7조 1,000억원 규모의 수출 정책금융도 공급될 예정이다. 법적 분쟁 비용을 최소화하면서 유동성 위기를 버텨내는 것도 하나의 전략이다.
7. 계약 갱신·신규 계약 시 반드시 챙겨야 할 것들
현재 이미 발생한 분쟁에 대한 대응도 중요하지만, 앞으로 맺을 계약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
불가항력 조항은 구체적으로 설계해야 한다. "천재지변, 전쟁, 기타 불가항력적 사유" 같은 포괄적 문구는 실제 분쟁에서 해석 다툼의 온상이 된다. 이번 사태를 반면교사 삼아, 전쟁, 무력 충돌, 국제 제재, 봉쇄, 주요 해상 항로의 폐쇄 등을 명시적으로 열거하고, 어느 수준의 장애가 발생해야 조항이 발동되는지("prevented" vs. "hindered")를 명확히 해야 한다.
인과관계 요건도 조항에 담아야 한다. 단순히 "불가항력 사유가 발생하면 면책"이 아니라, "불가항력 사유가 계약 이행 의무에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가질 것"을 명문화하는 것이 나중에 불필요한 다툼을 줄인다.
통지 조항은 현실적으로 설계해야 한다. 7일, 14일 같은 짧은 통지 기간은 위기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지키기 어렵다. 30일 정도의 기간을 확보하고, 이메일 등 현실적인 통지 방식을 복수로 지정하는 것이 좋다.
Hardship(경제적 어려움) 조항의 도입도 검토해야 한다. 불가항력은 이행이 완전히 불가능해진 경우를 다루지만, 현실에서는 이행이 불가능하진 않지만 경제적으로 감내하기 어려운 상황이 더 자주 발생한다. 이런 상황에서 재협상을 요청할 수 있는 근거 조항(hardship clause)을 도입하면 분쟁을 협상 테이블로 가져올 수 있다.
마치며
코로나 팬데믹 때 불가항력 논쟁이 폭발했고, 지금 중동 전쟁으로 그 논쟁이 다시 전 세계를 달구고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대기업들은 법무팀과 외부 자문단이 이미 불가항력 대응 매뉴얼을 가동하고 있다.
문제는 중소기업, 중견기업, 스타트업이다. 계약서를 만들 때 표준 양식에 들어 있는 Force Majeure 조항을 별 생각 없이 넣었다가, 막상 위기가 닥쳤을 때 "내 계약서에는 왜 아무런 보호가 없나" 하고 당황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조항의 이름이 당신을 지켜주는 게 아니다. 조항의 내용이, 그리고 그 조항을 제때 적절한 방식으로 발동시키는 당신의 행동이 당신을 지킨다.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설령 총성이 멈추더라도, 계약 분쟁은 오히려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 본 기고문은 공개된 보도 자료 등을 바탕으로 작성된 일반적 법률 해설입니다. 개별 계약 및 구체적 상황에 대한 자문은 반드시 법률 전문가와의 별도 검토를 거치시기 바랍니다.